사자성어처럼 보이는 '충탐해판'은 한 리더십 세미나에서 알게 된 용어이다.
충고, 탐색, 해석, 판단의 앞 글자를 모은 단어는 는 한데 묶어 놓고 보면 방어의 언어라는 사실이 더 잘 이해되었다.
충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이었다.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운 일이고,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행위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훈숙 기간 중 일상 속에서 충탐해판의 언어를 알아차리고 제거하는 일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온통 충탐해판 아닌 것이 없었다.
한때 우리 전통 학문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명리학을 공부하던 처음부터 그것이 불안감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학문을 도구로 하여 인생을 해석하고 타인을 판단했다.
그 학문을 활용하여 타인의 사주를 풀어줄 때는 그 지식을 권력으로 사용하였고, 타인에게 교묘하게 힘을 행사하는 느낌을 즐겼다.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 명리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끊었다.
명리학 공부의 방어기제적 측면을 알아차렸을 때 인간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 둔 다양한 틀들의 의미가 더 잘 이해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체질설, 동양의학의 8체질설, 혈액형별 성격 분류법, 서양 점점술로 보는 성격 유형, 에니어그램의 아홉 가지 성격 유형, 마이어스 브릭스 성격 분류법 등 무수히 많은 인간 분류 방식이 처음부터 불안에 대한 대응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충탐해판을 금지하면서 방어기제를 해체해 나갈 때 한 가지 불편한 상황이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신인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일을 맡았을 때였다.
그동안은 작품의 장단점을 칼같이 판단하고 작가의 재능을 예리하게 평가하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충탐해판을 배제하자 신인들을 심사하는 마음이 바뀌었다.
심사는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재능 있는 후배를 찾아내어 그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이었다.
관점이 바뀌자 심사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져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되도록 당선작을 내자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것이 또 다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성경에는 "심판받고 싶지 않으면 심판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불경에도 "분별심을 내지 마라"는 말이 있다.
분별심이란 세상이나 사람들을 이렇게 판단하고 저렇게 평가하는 마음이다.
예전부터 그런 말들이 있었는데 꼭 정신분석적 논리를 통해 그 뜻을 이해해야만 받아들이는 태도도 '해석'에 해당되는 방어 의식일 것이다.
만 가지 행동/ 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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