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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by 대화방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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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류지원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평범한 스무세 살은 아니다.

 

 나는 내 성마비 장애인이다. 가벼운 뇌성마비는 일반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고, 엄마는 내가 자궁에 있을 때 경미한 뇌졸중을 일으켰다. 그때 뇌 오른쪽에 구멍이 나서 왼쪽 신체의 기능이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지 육 개월이 지날 때까지 뇌성마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유독 오른쪽만 더 잘 움직이고 오른쪽으로만 굴러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한 부모님은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결국 뇌성마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물리치료와 작업 요법을 진행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나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놀았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왼팔이 굽어 있고 왼손의 위치가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휘체어를 타거나 보조기구를 사용해야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자유롭게 걸을 수는 있었으니까.

 

 나는 일반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작업 요법을 위해 종종 수업을 빠져야 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손으로 일직선을 그리는 연습을 통해 왼손의 기능을 개선하는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벽에다 테니스공을 던진 후 튕겨 나오는 공을 왼손으로 잡았다. 왼발을 끌지 않기 위해 달리기 연습을 했다. 신발 끈 묶는 법과 지퍼 잠그는 법도 배웠다. 이처럼 간단한 일상적인 일을 수없는 반복적 훈련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몹시 슬펐다. 치료는 도움이 되었지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무력감과 절망이 나를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여전히 나는 혼자 신발 끈을 묻지 못하고 바지 단추를 잠그지 못했고 코트 지퍼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운동복을 입고 벨크로가 달린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야 했다. 그리고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들은 내 바지를 내리거나 신발을 빼앗아 숨겨놓았다. 그러고는 잔인하게 놀려댔다.

 

 "바보야, 왼손을 내밀어봐. 그럼 신발 돌려줄게."

 나는 심한 모멸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 학교를 나가지 않음으로써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모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견디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텔레비전에서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스콧 해밀턴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23.5.9일 화요일

 

 

"인생의 유일한 장애는 나쁜 태도다."

 

 순간, 그의 말이 내 심장에 꽉 막혔다. 나를 놀려대 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싱가포르 장애를 갖고 있는 거였다. 그저 놀림을 당할까 봐 두려워 학교까지 포기할 생각을 했던 나 또한 마비된 내 왼쪽보다 더 심각한 장애를 알고 있는 거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됐다. 괴롭힘도 놀림도 당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아이들보다 더 크고 힘이 세졌기 때문이다. 물론 피나는 연습의 결과였다. 무엇보다는 내 인생을 대하는 나쁜 태도를 좋은 태도로 바꾼 결과였다. 태도를 바꾸자 그토록 말을 듣지 않던 내 왼쪽이 내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끈을 묶고 단추를 잠그고 지퍼를 올릴 수 있었다.

 

 체육시간에 홀로 스탠드에 앉아 친구들이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삶도 달라졌다. 나는 4년 반 야구를 했고 8년간 축구를 했다. 물론 나의 왼쪽은 쪽은 여전히 불편했다. 다만 그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도를 바꾸자 멘토를 만날 수도 있었다. 최육교사이자 축구코치인 크리스 호네스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게 오른손만을 사용해 저글링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양손으로도 하기 힘든 저글링을 한 손만으로도 척척 해내자,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놀림감이 아니라 주목받는 스타가 되었다.

 

 나는 방학기간에 열린 캠프스 농구를 선택했고, 두 번이나 최우수선수 상을 받았다. 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태도가 출중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농구부에 지원하지 않았다. 왠지 앞으로 키가 더 클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정식으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축구부에는 이미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넘쳤다. 그래서 코치와 다른 선수들을 나보고 매니저를 하라고 건의했지만 웃으며 사양했다. 내 목표는 그라운드에 있었지. 벤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나는 언론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농구선수도, 축구선수도 되지 못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나는 스포츠 기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스포츠 기자가 되지 못하면 스포츠 해설자에 도전할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놀림에 굴복했다면, 그래서 나의 왼쪽을 포기했다면, 나는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도를 바꾸자 나는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고, 배려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멋진 인생을 권유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내게 신발끈을 묻지 못하고 바지 단추를 잠그지 못하고 코트 지프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런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 하지만 고작 그 따위를 잘한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하는 인생은 없다. 원하는 것엔 날마다 조금씩 근접해 가는 인생 있을 뿐이다.

 

 

  태도를 바꾸면 그 속도가 매 순간. 좀 더 빨라진다.

                                                                   -크레이그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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