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 100% 내 책임
윌리엄 제임스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제임스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날 때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병마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에는 일시적으로 눈이 안 보인 적도 있고, 심각한 위장 장애로 구토하는 일이 음식을 신중히 다뤄 먹어야 했다.
청각에도 문제가 있었고, 허리에 경련이 일어나면 며칠 동안은 똑바로 앉거나 서지도 못했다.
건강 탓에 제임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친구가 별로 없었고 학교에서 특출한 학생도 아니었다. 대신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한재호.
제임스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한다고 느끼는 게 그림 그리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른 사람들은 제임스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림을 팔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축내고 있자, 부유한 사업가인 아버지는 그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남동생 헨리 제임스는 세계적인 소설가의 반열에 들어섰고, 여동생 앨리스 제임스도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윌리엄은 집안의 애물단지이자 천덕꾸러기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사업상의 인맥을 동원해 제임스를 하버드 의대에 입학시켰다.
이번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남기며,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제임스는 끝장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하버드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의학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제임스는 줄곧 사기꾼이 된 느낌 이에 시달렸다.
자기 문제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설 수 있는가?
어느 날 정신과 병동을 둘러본 뒤 제임스는 일기에 자신의 의사보다는 환자를 닮았다고 적었다. 몇 년 뒤 제임스는 의대를 그만둠으로써 또다시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아버지 분노를 감당하는 대신 도피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인류학 탐험대 합류에 아마존 열대 우림으로 향했다. 다. 1860년대 당시 대륙을 건넌다는 건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었다. 생존율 위협하는 전염병과 익사하는 소떼들이 가득한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아무튼, 제임스는 아마존으로 향했고, 진정한 모험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연약한 육체는 험난한 여정을 꿋꿋이 견뎌냈다.
하지만 마침내 목격자에 당도해 탐험을 시작하려는 찰나, 제임스는 천연두에 걸려 정글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다. 곧이어 허리 경련이 재발에 걷기 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제임스는 천연두로 바싹 여위고 허리 통증 때문에 거동이 힘든 상태로 남아메리카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다.(탐험대는 그를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갈 길이 막막했다. 몇 달은 걸릴 텐데 도중에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용케 뉴잉글랜드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를 맞이했다. 이제 나이가 서른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직업이 없었고, 하는 일마다 다 실패했으며,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는 건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고통과 실망뿐이 듯했다. 제임스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철학자 찰스 퍼스의 강의록을 읽던 제임스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1년 동안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 100% 내 책임이라고 믿으며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일기에 적었다.
이 기간만큼 실패에 대한 생각은 제쳐 둔 채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상황을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나아지는 게 없다면 그건 자신에게 상황을 바꿀 힘이 없다는 뜻이므로 그때 목숨을 끊기로 했다.
결과는?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가 됐다. 그 저술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그는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자 철학자이자 심리학자로 평가받는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되어 미국과 유럽 전역을 돌며 강연했다. 또한 결혼을 해 자식을 5명 낳았다.(그중 헨리의 유명한 전기 작가가 되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후일 제임스는 자신의 작은 실험을 '부활'이라 일컬었고 그 덕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단순한 깨달음이 있다. 명심하라,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이걸 알건 모르건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경험에 책임이 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사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있다. 사건에 대응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대응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접촉사고가 난다고 해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하는 건 당신 책임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언제나 매 순간, 매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언제나 가치를 선택해 그에 따라 살아가며, 기준을 정해 그것으로 사건을 평가한다. 때로는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인간은 어딘가에는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어떤 것에도 신경을 안 쓰는 것도 뭔가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선택에 관한 것이다. 무엇에 신경 쓸 것인가? 어떤 가치에 따라 행동을 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좋은 가치와 좋은 기준을 선택했는가?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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