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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매일 덜 틀린 사람으로 거듭나는 방법

by 대화방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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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자기 생각과 믿음을 의심해 보는 건 정말 익히기 힘든 기술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을 조금은 불확실하게 만들 몇 가지 질문을 알아보도록 하자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1. 내가 틀렸다면

 최근에 내 친구 에이미가 약혼을 했다. 그녀의 남편감은 건실한 남자였다. 술도 안 마시고 그녀를 못 살게 구는 일도 없었다. 친절한 데다 직업도 좋았다. 그런데 약혼한 뒤부터 줄곧 에이미의 오빠가 철없는 선택을 했다며 야단을 부렸다.


 그놈이랑 살면 불행할 거다. 실수한 거다. 무책임하다. 충고랍시고 별소리를 다 했다. 에이미가 "오빠, 왜 그래? 내가 결혼한다는데 왜 그렇게 짜증을 내?"라고 물으면, 그는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이게 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분명히 오빠는 심기가 불편했다. 아마도 쟤는 저렇게 가는데 나는 언제 결혼하지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매간의 경쟁심이나 질투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심각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타인을 괴롭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기 눈에는 화나거나 질투하거나 심란한 모습이 안 보이게 마련이다. 그걸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날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자기 확신이라는 갑옷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내가 질투하고 있다고? 그런가? 왜지?" "내가 화났다고? 그렇다면, 난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것뿐인가?" 이런 질문을 습관화해야 한다. 보통은 단순히 이런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겸손과 연민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내 생각이 틀렸는지 의심해 보는 것과 실제로 내 생각이 틀린 것은 다르다. 가령 당신의 애인이 술만 먹으면 폭력적인 사람이 된다면, 그 상황에서 그가 결혼해도 괜찮을 사람인지에 대해 의심을 품는 건 옳다. 내 말은 그때그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지 자학을 하라는 게 아니다.

 명심하라. 삶의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날이면 날마다 거기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면, 그건 당신이 이미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2. 내가 틀렸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자기가 틀렸는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게 의미하는 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바가 보통은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들이면 기존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와는 모순되는 다른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도 숙고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교육받은 사람의 특징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에 대해 숙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가치를 반드시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삶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일 것이다.

 에이미의 오빠는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동생의 결혼에 관한 내 생각에 틀렸다면 그건 무슨 뜻이지?" 답은 뻔하다. "난 이기적이고 불안정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머저리구나." 그의 생각이 틀렸고 동생은 행복하고 건전한 약혼을 한 것이라면, 사실상 그의 심리적 불안과 엉터리 가치관 외에는 그의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는 자기가 동생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안다고 믿었으며, 동생은 인생의 중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 동생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와 책임이 있다고 믿었으며, 자기 생각이 맞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 틀렸다고 확신했다.

 이런 종류의 허세는 까발려진 뒤에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와 우리를 등신처럼 행동하게 몰아가는 핵심 문제에 닿으려면, 진실을 캐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게 필수다.


3.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면 현재의 문제가 어떻게 바뀔까.

 이건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를 통해 내가 건전한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신경과민에 시달리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화풀이를 해대 되는 얼간이인지 판별할 수 있다.

 이 질문의 목표는 어느 문제가 더 나은지 알아내는 거다. 실망 판다가 말했듯이 살아가다 보면 문제가 끝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에이 미 오빠에겐 어떤 선택지가 있을 있을까?

A. 가족을 배경으로 막장 드라마를 써 내려가며 행복의 정의를 뒤흔들고,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던 여동생과의 관계를 망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저 저놈은 내 여동생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예감 또는 직감이 전부다.


B. 여동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과연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지 의심한다. 겸손한 자세로 여동생이 충분히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설령 믿음이 가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동생이 결정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A를 선택한다. 그게 쉬우니까. 깊이 생각하거나 재고할 필요도 없고, 맘에 들지 않는 다른 사람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 일도 없다. 그러나 A는 사건에 관련된 모두를 몹시 불행하게 만든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건 B다. 겸손함을 읽지 않고 무지를 인정하게 해주는 것도 B다. 불안을 넘어서서 성장하게 해 주고, 충동적이거나 교활하거나 이기적으로 굴때를 인식하게 해주는 것 역시 B다. 그러나 B를 선택하면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B를 선택하지 않는다.

 에이미 오빠는 그녀의 약혼에 반대할 때 자신과의 가상 대결을 돌입했다. 물론 그런 자기가 동생을 보호하려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우리 믿음은 자의적인 것이다. 심지어 어떤 믿음은 우리가 이미 선택한 가치와 기준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다. 그거는 자기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을 고려하기보다 차라리 동생과의 관계를 망치는 편을 택했다.

 

 전자를 택하면 애초에 그가 잘못된 생각을 하게 만든 불안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도 말이다.

 난 되도록 적은 원칙을 따르며 살아가려 노력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다. 맛이 간 게 나 아니면 나를 제외한 전부 둘 중 하나 일 때는, 내가 맛이 갔을 가능성이 아주아주 크다.

 난 경험을 통해 이걸 배웠다. 나는 불안과 엉터리 확신에 휘둘려 수도 없이 헛짓거리를 벌이는 얼간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늘 옳다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틀리고 당신이 옳을 때도 있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평범한 현실이다. 당신과 세상이 대결하는 느낌이 든다면, 실제로는 당신과 당신 자신이 대결하는 게 현실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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