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강물, 추억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해독제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라>라는 작품이 있거니와 레테는 '망각의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세 가지의 레테가 등장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레테가 바로 저승 앞을 흐르는 레테, 즉 망각의 강의다.
저승으로 들어가려면 이 강을 건너야 한다.
이강을 건너면 이승의 추억은 깡그리 잊는다.
그러니 추억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해독제가 아닌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또 하나의 레테는 잠의 신 휘프노스의 동글 속을 흐른다.
이 휘프노스의 수면관으로는 해가 하늘로 떠오를 때도, 중천에 걸려 있을 때도, 질 때도 햇빛이 비치는 일은 없다.
바닥에는 구름과 그림자가 희미하게 깔려 있다.
이곳에서는 닭이 큰 소리로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부르는 일도 없고, 눈 밝은 개, 소리에 민감한 거위가 정적을 깨뜨리는 일도 없다.
오직 정적만이 이곳을 지배한다.
그러나 레테(망각의 강)는 속삭이며 흐른다.
그 소리가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잠재우는 것이다.
동글 입구에는 양귀비와 약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수면관에는 문도 없다.
문이 있으면 돌쩌귀 소리가 나기 때문이란다.
레테가 하나 더 있다.
망각의 강을 건너고도 이승의 추억을 해독하지 못하는 망령을 위한 레테의 걸상인데, 이것은 저승신 하데스 앞에 있다.
여기에 앉으면 이승의 추억이 더 이상 망령을 괴롭히지 못한다.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가 여기에 앉은 적이 있다.
티륀스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저승에 갔다가 산 채로 저승으로 들어가 망각의 걸상에 앉은 테레우스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하데스의 권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헤라클레스가 누구인가?
아틀라스를 대신해서 하늘 축을 어깨로 버틴 천하장사가 아닌가?
헤라클레스는 우격다짐으로 테레우스를 일으켜 세웠다.
테세우스는 일어섰지만 엉덩이 살은 고스란히 걸상에 남았다.
테세우스는 하데스에게 엉덩이 살을 털린 셈이다.
이 전설은 하여튼 둘러대기 좋아하는 그리스 시골 사람들이 약삭빠른 아테네인들을 '뾰족 궁둥이'라고 놀려먹을 때마다 되살아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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